사용자에게 노동시간은 생산성, 비용산정 등의 도구이며, 노동자에게는 복종의 시간과 임금산정의 도구다. 여기서 노동조합이 그동안 임금‘액’의 인상에 몰두하여 복종의 노동시간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방식이 얼마나 피폐한 노동조건을 만들어내는지를 간과했다는 사실이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이 결국 임금을 인상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저하 없는 노동시간의 단축은 현실 가능한 의제가 될 수 있다.
만약에, "주 4일제"가 현행 주 40시간과 연장에 추가 연장제도를 유지하면서 시행한다는 발상이라면 장시간 노동의 고착으로 이어질 것이다. 현행 근로시간법제를 이용하면 1일 10시간 노동으로 "주 4일제"은 완성된다. 누군가는 ‘1주일 노동을 2일에 몰아서 하고 나머지는 쉬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1일의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하자고 죽임을 당하며 투쟁했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1866년 국제노동자대회에서, 1886년 시카고 노동자의 파업(노동절의 기원이다)을 거쳐, 1919년 국제노동기구에서 채택된 1일 노동시간이 8시간이다. 피와 죽임의 역사속에서 쟁취한 결과였다.
노동시간의 선택권은 하루를 기준으로 최고 8시간이내로 해야 최소한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선결조건이 된다. 여기에 8시간분의 임금이 보장되고 확보되어야만 실현된다.
문제는 주 4일제, 3일제가 아니라 1일 노동시간을 줄이는 노동시간제의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는 법률로 노동시간을 강제하고 있다. 만약에 노동자가 근로기준법 제50조 제1항을 “1일 동안 8시간을 강제하고 복종해야 하는 시간”으로 읽는다면, 강제되고 복종해야 하는 노동시간에서 "해방되는 시간"을 달라고 주장해야 한다. 노동시간은 휴식시간에 반대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1일 최소 휴식시간의 보장, 1주 최소 휴식시간의 실현을 요구하는 주 4일제라면 어떨까.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에 15시간은 노동에서 해방되는 시간 나머지가 노동시간이면 7시간 노동제는 현실이 된다. 자본이 만든 소비층, 언론이 선전하고 기성세대와 분리된(의도된) MZ세대의 노동에 대한 상상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임금에 앞서 시간과의 싸움이 되어야 한다."
2003년 9월 15일은 근로기준법이 개악된 날이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꺼내, 주 4일제가 대선공약으로 채택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노동법 개악투쟁에 패배한 노동조합운동이 반성과 고민 없이 주 4일제의 찬성으로 쏠릴지 염려된다. 하루가 없이 일주일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노동시간의 결정권과 선택권은 '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에게 있어야 한다. 1일 노동시간의 단축이 없는 주 4일제를 반대하는 이유다.